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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0627 런던입니다

견고한 사람 2018. 6. 29. 18:23

26일부터 런던이었다.

떠나는 날은 비가 많이 왔다. 그때쯤부터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 정말 절묘하게 장마 첫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왔다 이번에는 운좋게 영국항공의 직항을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가격에 (성수기임을 감안할 때) 구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귀찮은 경유 없이 나름 편안하게 도착했다. 다만 이륙 전에 기내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서 좀 더운 상태에서 한시간 여를 기다렸다 그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지난 여름 빈으로 떠날 때 이북을 구매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외국살이를 이렇게 금방 또 하게될 지는 몰랐는데 어쨌든 해외에 갈 때 종이책을 무겁게 들고다닐 수는 없으므로 . 바보같이 음악을 다운 받지도 새 책을 구매하지도 않았어서 갖고 있는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쇼코의 미소를 또 읽었다. 크레마 안에 있는 걸 읽어야할 때면 늘 한지와 영주를 읽는데 이번에는 쇼코의 미소도 다시 읽었다. 작년에 읽을 때랑은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고 너무 공감되는 구절이 있어서 찍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의미였다." 그런 삶이 무의미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소유가 한 때 추구했던 삶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 같은데 후에 그걸 소유처럼 혐오하게 될까봐 무섭고 사실 그게 꿈이 아니라 허영일까봐도 두렵다 다들 인턴을 하고 계절학기를 듣고 로스쿨을 준비하고 고시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내가 이곳 런던에서 이렇게 팔자좋게 늘어져있어도 되는걸까- 무언가 찾아보겠다는 명목하에. 아니면 뭘 할지에 대한 계획도 특별히 없으면서 휴학을 해도 되는걸까? 이런 조바심 요며칠 조금 느끼고 있다. 

기내에선 너무 보고싶었던 레이디버드랑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봤다. 두 영화 모두 최고까진 아니었지만 좋았다. 특히 레이디버드는 보는 내내 서너번은 눈물 글썽였던 것 같다. 사실 고작 삼일 지났는데 기억이 잘은 안날만큼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지만. 조금 뻔했던 것은 주체적인 주인공이 학교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애의 무리에 끼고 싶어했다가 원래의 진정한 친구에게 돌아가는 흐름?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거의 무조건 등장하는 플롯이다. 빈에서 생활한 이후로 리스닝이 한단계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네이티브의 말이나 영어노래 가사, 영화 대사 같은 게 막 기를 쓰지 않아도 상당부분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래도 영어 자막을 켜고 봤는데 그래서 거의 놓치는 부분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좋았던 대사는 줄리가 프롬에도 가지 않고 우울하게 집에 있다가 레이디버드가 왔을 때 했던 말인, "Some people aren't built happy, you know." 그리고 레이디버드가 일하게 된 카페의 손님으로 왔던 카일?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을 보고 오빠가 flirt하지 말라고 하니까 "I wasn't flirting!"이라고 했었는데 카일이 "I wish you had been."이라고 말했던 것. 근데 카일 캐릭터 너무 극혐이었다 이 때 이후로는 계속 진짜 으웩. 중이병 말기 말기 말기였다. 그리고 레이디버드가 거짓말 한 것에 대해서 사과했을 때 잘나가는여자애가 "Apology accepted, I think." 이라고 말했던 것. 이건 그냥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레이디버드에서 좋았던 부분은 가족과 관련된 시퀀스들이랑 레이디버드가 게이였던 남자친구를 용서하고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리는 그를 안아주며 괜찮다고 다독이던 장면. 어디서 울었냐면, 레이디버드가 프롬 의상을 고를 때 - 아니야 이건 레이디버드 감상을 따로 써야할 것 같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은 3월 개봉 초기부터 보자 보자 친구랑 계속 이야기했었는데 결국 못본 영화였다. 이번 기회에 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실망했다. 왜냐하면 그냥..개인적으로 대사가 적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뭔가 콜바넴은 되게 산만했다. 영상미나 연출, 색감 같은 건 너무 예뻤지만 깊이 몰입되지도 않았고(기내여서 그럴 수도 있다.) 그냥 아.. 진짜 저렇게 이탈리아에 별장을 두고 여름에 가서 맨날 햇볕 쬐면서 책 읽고 수영하고 파티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교수여서 가능한 걸까? 이 생각의 빈도가 가장 잦았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인 두 남자배우가 나왔다는 게 좋은 정도?

그러고 착륙해서 집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른다. 까다로운 런던의 입국 수속, 짐 찾기, 화장실 들러서 렌즈 끼기, 심SIM 사기, 그리고 트래블카드를 살지 버스트램패스를 살지 꽤 고민하고 구매하는 과정을 모두 거쳐서야 런던 시내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지하철로 한시간 가서 버스를 타야하는 여정이었는데 일단 런던 튜브는 너무 조그맣고 환기도 제대로 안되고 에어컨도 없어서 킹스크로스에 내릴 때 쯤에는- 과장을 좀 보태자면- 토하기 직전이었다. 집 도착해서 이불 베개를 사러 다시 나올 생각이었는데 시간과 내 상태를 보아하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역 부츠에서 샴푸와 린스와 샤워젤을 사고 마침 도착한 버스를 부랴부랴탔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거였고. 런던은 차선 방향이 한국과 반대여서 잘못타기 정말 쉽다... 사실 그 때 한번만에 제대로 탔으면 피로가 배가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 잘못타서 어딘가에서 내려서 십분을 또 기다렸고. 겨우 버스를 타고 동네로 와서는 또 캐리어를 끌고 십분을 걸은 후에.. 집에 당도했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인 계단이 있었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라 캐리어를 끌고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쉼없이 끝까지 가야했고 사실 계단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또 2층의 똑같이 생긴 흰색 문 중 어느게 추네 집일까 고민하다가 남의 집 열쇠구멍을 몇번 후비기도 하고.. 그렇게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ㅎㅎ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집 샤워기는 한쪽은 온도 조절 한쪽 밸브?는 수압 조절을 하는 식으로 되어있는데 온도조절 밸브가 차가운 쪽으로는 잘 돌아가질 않았다. 사십 몇도로 생각없이 맞췄는데 너무 뜨거워서 온도를 낮추려고 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그게 불가능해서 이미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열이 찬 상태에서 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힘들었다... 샤워를 가능한 빠르게 마치고 한숨 돌렸다. 그 때가 이미 9시쯤이었다. 착륙은 세시반쯤이었는데 언제 여섯시간이 지난 건지.

그 때 테라스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이랬다. 내가 도착한 날이 마침 구름한점 없이 맑은 날이었어서 노을이 너무 예뻤고 아홉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분명 '밤'인데 밤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밤인데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테라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시원한 공기 맞으면서 잠시 앉아있었다.

조금 후에는 - 그러니까 열시 쯤- 이렇게 되었다. 여긴 열한시가 지나야 완전히 깜 깜 해진다. 열시에는 확실히 어둡긴 한데 여전히 스카이라인은 군청색이다- 해가 덜 져서. 요즘 보름달로 향하는 때라 매일 저녁 부엌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아주 동그랗고 밝은 달이 눈에 잘보이는 위치에 덩그라니 떠있는데 참 예쁘다. 추는 이렇게 예쁜 곳에 살았네, 생각했다.

다음 날 다섯시반에 눈이 떠졌다. 시차 때문이다... 무언갈 하다가 옷장정리를 했는데 최근에야 깨닫게 된 내 취향이 너무 잘 드러나서. 예쁘다.

열시부터 열두시 쯤까지 한숨 잔 뒤 간단히 햇반으로 점심을 하고 이불과 베개, 수세미 등을 사러 시내로 나갔다. 여긴 날씨가 정말 환상적이다. 더운데 습하지 않아서 그냥 따땃하다. 서양인들이 왜 그렇게 여름을 좋아하는지 매일 이해하고 있다. 서울의 여름은 (이제?) 습하고 탁하고(미세먼지) 아프리카보다도 더워서, 빈의 내 독일어 선생님 바바라가 여름이 끝났다고 아쉬워하던 것 만큼 좋은 것이지를 못하는데. 어쨌든 그저께는 정말 구름 하나 없이 맑은 날이었다. 옥스퍼드 스트릿의 프라이마크에 가서 이불 베개를 10파운드 안되게 구매하고 한국에 두고와서 땅을 치고 후회했던 가디건이랑 비슷한게 있나 별 기대없이 살폈는데 코튼 백퍼센트의 짜임도 좋은 가디건이 5.5파운드여서 완전 심봤다하고 같이 구매했다. 기분 진짜 좋았고 이곳의 여름은 그늘에 가면 서늘하고 일교차가 정말 커서 잘 입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퇴근길 버스를 타서..... 좀 힘들게 집에 도착했다. 아아 마트도 들렀었다. 나는 약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곳에 왔는데 실제로 하루이틀 있어보니 여기서도 생활을 해야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매일 와사비나 새인즈배리에서 밥을 사다먹을 수도 없고 외식을 할 수도 없고. 매일 햇반에 통조림만 먹자니 인간의 존엄성이 아주 조금씩 깎여나가는 기분이고.. 마트에 나는 분명 수세미 정도를 사려고 들른건데 어느새 카트를 끌면서 야채 물가를 살피고 장을 보고 있는.. 마트를 아주 꼼꼼히 스캔하고 있는 나를 발견... 빈에서의 생활인 부활. 뭘 좀 사려다가 아무래도 집가는 데 무리일 것 같아서 자제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고. 저녁으로는 온더고 피자한조각을 사고 바로 옆 와사비에서 연어 두개 롤두개를 사서 겨우 귀가했다. 체력이 남아서 테스코까지 산책삼아 걸어갔고(해봤자 8분)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감격. 그런데 빈에서 너무 좋아하던 innocent 스무디가 여기도 있는거. 너무 반갑고 또 갈증나던 참이라 거금 3.5파운드 정도 들여서 700미리 한병 구입하고 빵 잼 팝시클!!! 사서 귀가했다. 유럽의 먹을거리 아주 이따금씩 그리웠는데 조금 다르긴하지만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기분 좋았다.

장보러 나가기 전에 이랬다. 너무너무 예쁜 이곳의 날씨. 매일 감탄한다... 일단 최소한 요즘은 바르셀로나 뺨친다!

밤이 되면 이렇게.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추의 방 정말 마음에 든다. 시차적응 차원에서 이 날은 열두시까지 버티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다섯시 반에 눈 뜬 건.. 함정이다. 28일 하루는 조금 이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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