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행/런던생활

0721 활기 바람 사진, 0722

견고한 사람 2018. 7. 23. 02:11

Don't. Eat. Visitors.

오늘은 S와 포토벨로 마켓에 갔다가, 저녁에 스페인 타파스 레스토랑을 가고 저녁에는 테이트 모던의 카페에서 야경을 보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열두시께 되어서야 설렁설렁 나갈 준비를 하고, 저 세개 중에 하나 정도 클리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보통의 나인데 오늘 일정은 좀 빡빡했다. 또 시간 딱 맞춰 집을 나선 나는 교통체증이 필수 동반되는 버스를 못타고 종종걸음으로 15분 가량을 걸어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그 때 보게 된 자연사박물관 광고가 귀여워서 한 컷.

마켓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냥 뭐 먹을 거 좀 있고 건물 외벽 좀 예쁘고 그렇겠지? 정도 생각하고 갔는데 여태 가본 마켓 중에 사람 제-일 많았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채워진 매대가 아주 길게 줄지어 있었고 먹을 것도 많았다.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으로 유명하지만 그건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일회용이 아닌 필름카메라에 최근 관심이 좀 생긴 참이었고 또 열고 닫기 편하고 넉넉한 크로스백, 목걸이가 좀 사고 싶었어서 이것들을 중점으로 해서 마켓을 둘러봤다. S와 나는 점심으로 길거리 음식 중에 가나 음식을 사 먹었는데 볶음밥과 코코넛 치킨, 맵게 요리한 소고기를 그릇에 삼등분해서 담고 위에 튀긴 바나나 슬라이스를 올린 것이었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코코넛 치킨이 정말.. 대박

기분좋게 마켓 구경을 시작한 우리는 마켓의 끝으로 걸어가서 시작점까지 되돌아오며 구경했다. 편해보이는 버버리 빈티지 크로스백이 있었는데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정면에 눈에 너무 잘 띄는 흠이 있어서 내려놓았고 카메라들도 구경했는데 들고 다니기에 너무 무거웠다. 일회용 필름카메라가 역시 짱인걸까. 마켓 시작점에 거의 다다라서 목걸이를 하나 샀다. 검은비즈? 큐빅?이 박혀있는 하트모양 작지 않은 펜던트에 금색 줄이었는데 은으로 만들어졌다고 직원이 아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원래 25파운드인데 마음에 들면 20파운드에 해주겠다고, 내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린지 한 3초만에 (ㅋㅋ)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뭔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안된 것 같았다. 카드로 결제해도 될까요? 그래도 20파운드인가요? 하니까 당연하죠! 라고 한 것도 ㅋㅋ

S는 노팅힐에서 나와서였나 여튼 유명한 컵케익 집에서 레드벨벳 하나 누텔라 하나를 샀고 나도 조금 맛봤는데 올려진 크림이 정말 장난아니었다 엄청엄청 진해서 정말 맛있었다.

그러고 카페에서 좀 쉬다가 옥스퍼드 서커스 쪽으로 이동해서 S의 스냅샷 촬영에 필요한 샌들을 좀 찾아보다가 오픈 시간에 맞추어 타파스 바를 찾았다. S에게 설마 저기 아니지?라고 물어볼 정도로 오픈 전부터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이미 줄 서있었는데, 한국인 뿐 아니라 모두에게 유명한 식당 같았다. 후기랑 검색을 통해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인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 본 식당이면 무조건 맛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포스팅하긴 하지만, 이 레스토랑에 대해서는 모두가 끝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미슐랭 원스타라니. 게다가 스페인 요리라니... 나는 정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래도 조금 일찍 간 덕에 바에서 타파스가 만들어지는 걸 보진 못했지만 야외 테이블에서 30분 정도만 기다리고 바로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메뉴 주문 전에 음료를 미리 시킬 수 있었어서 화이트 와인 먹으며 메뉴 탐구한다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우리가 시킨건 염소 치즈 크로켓, 문어 크레이퍼, 이베리코 스테이크, 토마토 간 것을 올린 바게트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하몽 같은 것(?)이었다. 감바스도 궁금했지만 무슨 맛인지를 아니까 그냥 다른 걸 먹어보기로 했다.

이베리코 스테이크- 스페셜 메뉴에 있던 것이고 정식 이름은 기억 안 난다. 무지 길고 생소했다.

하몽같은 것(?)과 간 토마토를 올린 바게트. 바르셀로나 여행 때 푸엣과 함께 먹은 기억이 있어서 둘 다 주문한 후에 바게트에 올려 먹었다.

염소 치즈 크로켓이 가장 먼저 나왔는데 과장이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글썽했다. 크로켓을 반으로 가르자 치즈가 흘러나왔고 얼른 입에 집어넣고 씹었는데 그 부드럽고 고소한 치즈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뜨끈하게 내려가는 게 느껴졌고 정말.. 지금도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었다. 원재료의 풍미가 아주 잘 살아있는 그런 맛 이 뒤에는 문어 크레이퍼가 나왔는데 S가 언니 입에서 녹아.라고 했다. 그리고 먹어봤는데 정말 입에서 녹는다는 게 뭔지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알게 됐다. 문어가 그렇게 부드러운 거 정말 처음이었다. 한입 크기로 썰어 어떻게인지 짐작 안 가는 방식으로 요리한 문어에 오일과 매콤한 소스를 얹고 여기에 뭔지 모르겠는 작고 동그란 향신료 열매같은 걸 같이 내었는데 정말.. 조화가 대단했다. 아아 염소 치즈 크로켓은 건포도와 무언가를 함께 버무린 것과 같이 서브되었는데 정말 단짠의 조화가.... (말을 잇지 못한다) 이런 서양식 맛있음 너무 좋아한다. 한국은 뭔가 좀 양념으로 재료의 맛을 덮어버리는? 음식들이 많은데(매우 좋아함) 서양은 재료 각각의 식감과 맛이 살아있는 식으로 요리하는 게 한국보다 지배적인 것 같다. 이후에는 이베리코 스테이크가 나왔다. 겨자색 소스를 바닥에 조금 깔고 그 위에 네 조각의 스테이크를 얹고 그 위에 칠리..? 류의 소스를 조금 얹은 것이었는데 이 소스와 고기도 너무 잘 어울렸다. 고기만 먹는 것보다 이 소스를 소량 묻혀서 먹는 게 더 맛있었다. 셰프들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요리사랑 결혼하면 진~짜 좋겠다고도 생각했으며 돈 많이 벌어야겠다. 라고도 생각했다. 이까지 먹으면서 앞으로 미슐랭을 찾아다녀야지, 어떤 블로그에서 본 것과 같이 원스타가 이정도로 맛있으면 투스타 쓰리스타는 대체 어떻다는 거지?라는 생각들도 하고 이렇게 맛있는 걸 못먹어본 엄마 아빠를 떠올리기도 했다. 맛없는 것을 먹으면서 내 삶의 식사들을 낭비하는 게 가슴사무치도록 아까웠고 맛없는 걸 먹었던 시간들에 화가 날 정도였다. 근데 나 메뉴 세개 먹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구나... 어쨌든 한국 가도 쓸 데 없는 지출 줄여서 미슐랭 가끔씩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눈물과 경탄과 감동과 경건함의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테이트 모던으로 향했다. 다리 근처로 가서 거기서 걸어가자는 내 의견에 따라 세인트 폴 대성당을 거쳐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넌 뒤에 테이트에 도착했다. 모든 게 역광인 시간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때.-의 세인트폴 대성당은 더욱 아름다웠고 웅장했다. 템즈 강은 평소보다 맑은 것 같았다. 강바람을 맞으며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는 중에 테이트 모던 앞의, 패턴 나시 원피스를 입고 금발을 틀어올린 여자의 몽환적인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그 공간과 시간과 온도와 바람과 공명했다 좋음을 마음 속에 꼭 담아 그 안에서 메아리치고 깊어지게 둘 때와 좋다고 소리내어 말할 때 중 언제가 더 좋은 걸까 생각하면서도 너무 좋다, 를 자주 입밖에 내었다

S는 망설임 없이 맥주를 시켰지만 나는 이미 와인 한잔을 했고 알콜분해를 잘 못하는 내 몸을 알기에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세인트폴 대성당과 템즈강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배치된 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 런던의 해질녘을 감상했다. S가 수업을 통해서 이전에 당연하다 생각해온 것들이 이젠 불편하다고 혹은 이전에 불편했는데 왜인지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기뻤다. 나는 시시하고 뻔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이 아이에게는 아주 소중한 새로운 배움 그리고 전환의 계기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좀 앉아 있다보니 빨갛고 동그란 해를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되었고 예뻤다

S와 저녁의 런던을 활보하고 다니면서 아 이 도시, 내가 미워했던 것 보다는 더 좋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런던이 이전보다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세인트폴 대성당 근처를 걸으면서는 내가 너무 이 도시에 벽을 치고 싫다고 해온걸까? 생각하며 마음의 문이 열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좋았다. 기차타고 집가려고 플랫폼에 앉아서 십오분 정도를 가만히 기다렸는데 시원하면서도 시린 느낌 없이 아직 햇빛의 온기가 남아있는 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 좋았다. 정말 좋으면 가방을 뒤적여 구석에 쳐박힌 필름카메라를 꺼내게 되고 어제는 두번이나 그랬다. 흐린 해질녘 쓸쓸해보이면서도 단단한 세인트폴을 세로로 한번, 바람이 좋았던 블랙 프라이어스 역 플랫폼 한번.


(0722)

세븐시스터즈와 브라이튼을 갔다가 하루 쉬고, 포토벨로마켓- 바라피나- 테이트모던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오늘 또 하루 쉬고.

Y가 언니와 부다페스트에서 돌아와 캐리어를 가지러 오는 날이어서 밖에 나가기가 애매했다. Y가 아니었다면 어제의 감동을 이어 세인트 폴대성당에 미사 드리러 (무교지만 역시 무교인 S의 추천을 받았다) 가보려고 했다. Y는 여독에 몸살에 걸려있었고 같이 점심 외식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았다 마침 집에 순두부찌개 양념과 야채 계란 등의 재료가 다 구비되어있어 찌개 해서 언니와 Y를 먹이고 얘기 조금 나누며 놀다가 그들은 두시간 쯤 후에 숙소로 갔다 음식해서 누구 먹이는 거 좋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요리도 그런 맥락에서 좋아하는 걸까 물기 있는 야채를 깍둑썰기 하는 것도 좋고. 요즘은 주방칼이 없어서 스테이크 칼로 야채를 써는데 그럼 가루가 생긴다 요리할때 가루 섞이면 지저분하니까 물에 헹궈서 사용하는데 그렇게 뭔가 헹구어 내서 정갈해진 야채 조각들을 냄비에 넣는 것도 좋고. 김 모락모락나면서 내가 아는 그 음식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도 먹으면서 배가 차 가는 것도 너무 좋다. 언니랑 Y는 여행 끝자락이라 한식에 굶주려 있는 상태여서 맛있게 먹어줘서 더 좋았다. 언니가 설거지를 해주었는데 고맙단 말 못한게 마음에 좀 걸리지만 ㅎㅎ Y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렇듯이 언니도 성격 좋았고 즐거운 점심이었다. Y는 아파서 상태가 그렇게 안좋았지만

그러고 나는 뭘했는데 벌써 여섯시지? 아 근교 여행 라벤더 농장! 가는 방법과 투어 상품들을 좀 알아봤는데 S가 말한 게 제일 나은 것 같아서 그걸로 담주 주말에 라벤더 농장을 가기로 했다. S 답오면 바로 예약할 건데 으악 가겠다고 맘 정하고 나니까 모객 종료될까봐 마음 조금 졸이고 있다 S 답오면 아빠 카드로 바로 해야지 아빠 미안! 돈 들어오면 바로 송금해줄게용

내일은 새 코스 시작하는 날. 사실 아주 아주 조금은 기대된다 새로운 사람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일단 연극은 공부해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 젠더보다는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인롤먼트를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내일 뮤지컬 한편 볼까 싶다 수업끝나고 학생할인 표를 찾아 돌아다녀 볼까 아니면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을 갈까 고민된다 이제 S와 다른 모듈을 듣게 되는데 새 모듈에서는 친해질 사람이 있을까? 종종 점심을 함께할 사람. 없으면 조금 심심할 것 같긴하다

여행자들과 다니면 좋다 곧 떠날 사람의 느낌- 잠시 머무르는 사람의 느낌이란 게 있거든 오래 머무르는 사람보다 더 열려있고 자신을 보여주려 하고 그런 것들 정확히 어떤 점이 그 느낌을 형성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여행'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일상의 인간들보다 조금 더 발랄한 그리고 발랄하지 않더라도 더 도전적인..? 느낌이 있다. 모르겠다 내 표현력에는 한계가 있네 음 일상에 매몰되지 않은 이라고 말하고 싶다 죽어있는 생각 말고 새로운 자극들에 더 민감하고 그래서 평소에 내 나라 도시 집에서는 하지 않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생경한 느낌을 자주 받는

내일은 오랜만에 화장해볼까 싶은데 안할 수도 있다 브라이튼 동행 언니의 꾸밈은 이재용처럼이란 말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니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적도 있다 난 이렇게 정했다: 옷 잘입는 센스 있는 남자 정도로 꾸미기로 이 또한 하나의 자기검열이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단 나는 그 획일화된 하얀 얼굴에 좀 진한 입술색 붉은 볼과 고운 피부결 이런 미의 기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여행 > 런던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706 그간 지낸 이야기  (0) 2018.07.06
180701 여름의 프림로즈힐  (0) 2018.07.0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