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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맞서는 댄디의 카르페디엠
: 소공녀 microhabitat, 2018
<소공녀>는 3월 개봉한 독립영화로, 인생에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만 있으면 족하다는 주인공 미소가, 월세가 오르자 담배와 위스키가 아닌 집을 포기하고 대학시절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미소는 대학시절의 친구들 그리고 남자친구와는 매우 대조적인 인물인데 이를 댄디와 스놉 그리고 카르페디엠과 포스트모던의 분열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I. <소공녀> 요약
II. 군중 속 고독한 댄디, 미소
1. 스놉
2. 댄디
3. 더 멀어진 스놉과 댄디
III. 미소의 카르페디엠은 연속적이다
1. 카르페디엠과 스키조
2. 미소와 카르페디엠
3. 유예된 행복 혹은 실종된 행복
4. 누가 스키조인가
I. <소공녀> 요약
미소는 일당 사만 오천 원을 받는 가사 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는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인생에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어느 날 월세가 오만 원 오르고 담뱃값마저 인상되어 자신의 수입으로는 더 이상 고정적인 지출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가장 먼저 집을 포기하고 대학시절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잘 곳을 마련하지만 다들 사정이 있어 오래 머무르지는 못한다. 그러던 중 공장에서 일하며 웹툰 작가를 지망하던 미소의 남자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중동으로 해외 파견근무를 떠나게 된다. 이후 밴드에서 보컬을 맡았던 선배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미소를 제외한 밴드 멤버들이 오랜만에 모두 모여 미소의 이야기도 하게 된다. 이후 여전히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는 미소의 모습이 짧게 여러 번 화면에 잡히고 맨 마지막에는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밤을 보내는 그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가 끝난다.
II. 군중 속 고독한 댄디, 미소
1. 스놉
(1) 스놉이란
속물, 즉 스놉이란 타인에 대한 모방, 저속한 취향, 권력과 같은 세속적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른 행동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인물을 의미한다. 스놉의 한 유형인 아돌프 아이히만과 <The Reader>의 한나를 떠올려보면 주체적인 사유 없이 타인 즉 다수의 평가기준에 따라 살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스놉은 인정과 존중을 좇고 외면과 배제를 두려워한다.
(2) 미소와 다섯 스놉
-문영
미소와 대학교 때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 다섯 명은 전형적인 스놉이다. 가장 처음 찾아갔던 친구인 문영은 살인적인 업무를 견디기 위해서 스스로 링거를 놓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회사 휴게실에서 미소를 만나서도 링거를 맞으며 반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대화를 나눈다. 어쩌다 담배 이야기가 나와 미소가 “넌 (담배) 끊었어?”라고 물어보자 화들짝 놀라며 누가 들을까 미소에게 타박을 준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여성의 흡연은 금기시되고 문영은 그러한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가지로 담배를 꼽으며 영화 전반에 걸쳐 수 없이 등장하는, 평온한 무표정을 하고 담배 연기를 뱉어내는 미소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문영은 집을 나왔다는 미소의 말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이... 없다고? 네가 그 정도로 돈이 없어?”라고 되묻는다. 미소의 선택에 대해 그녀는 “너 바람 든 거 같다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게 그렇게 이상한 얘기냐는 미소의 반문에는 “스탠다드는 아니지. 멋있다 야”라고 답한다. 그녀에게 돈이 없을 때 우선적으로 포기해야하는 것은 담배이며 집은 가장 마지막 선택지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와는 반대되는 미소의 선택을 “스탠다드”가 아닌 것으로 단정한다. 나아가 이를 철없고 현실감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가 덧붙인 ‘“멋있다”는 말은 정말 본받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표준에서 크게 벗어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 대단히 특이하다 정도의 뜻에 불과하다. 점심시간에 링거를 맞아가면서까지 스스로를 상식적인 삶의 틀에 우겨넣는 문영에게 잘 곳 대신 취향을 택한 미소는 비정상이다. 이와 같이 표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적인 가치보다는, “나 열심히 해서 더 큰 데 갈 거야”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승진, 성공, 타인의 인정 등을 중시하는 문영을 스놉이라고 할 수 있다.
-현정
두 번째로 찾아간 친구인 현정은 다 쓰러져가는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 시부모와 함께 살며 가사노동을 혼자 도맡아하고 있다. 가족 간에 대화라곤 없는 집에서 요리를 못해 시부모에게 미움 받고 미소와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짓다가도 피곤에 3초 만에 곯아떨어져버리는 현정은 불행한 주부다. 그녀는 ‘아내’, ‘며느리’라는 지위에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역할들에 질식당하고 있다. 아침부터 온가족 식사를 챙기고 하루 종일 빨래, 청소를 한다. 정작 본인은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미소를 맞이하는 현정이지만 외부로부터 부여된 지위에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꾸역꾸역 매일의 의무를 다하는 그녀에게서 아이히만 내지는 한나의 무사유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제 끼니 챙길 시간도 없는 친구를 보고 미소는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놓고는 조용히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대용
세 번째 멤버는 남자 후배인 대용이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대용은 사실 결혼한 지 몇 달 안 되어 이혼을 한 상태이다. 대용에 따르면 그의 아내는 “아파트, 아파트 노래를 불러서 아파트를 구해놨는데 날아가 버렸다.” 그러니까 그는 하우스 푸어인 것이다. “백만 원씩 이십년을 내면 이 집이 내 거가 된다. 그 때 되면 이 집이 낡겠지.”라고 말하며 그는 그 집을 감옥이라 칭한다. 무엇이 그를 자발적으로 이십년간 노예상태가 되게 만든 것일까. 이십년간 빚을 져야 가질 수 있는 새 아파트는 누가 원한 것일까. 대용이? 혹은 그의 전처가? 번듯한 아파트 한 채는 갖고 시작하는 것이 이상적인 신혼생활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록이
네 번째로 찾은 집에서는 노총각 선배 록이와 그의 나이 드신 부모님이 함께 살고 있었다.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미소를 대하던 그의 부모님은 미소의 잠자리로, 록이의 방에 원앙이 수놓아진 비단이불 한 채와 베개 두 개를 준비해 미소를 당황시킨다. 노총각 아들을 결혼시키겠다는 마음은 급기야 미소를 집안에 감금하는 소름 돋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게 된 미소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집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겨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가까스로 탈출한다. 침대에 누운 록이는 바닥의 미소에게 대뜸 “우리 결혼할까” 묻고 미소가 싫다고 해도 끈질기게 설득하려 든다. 록이와 그의 부모님의 결혼에 대한 집착은 그가 혼기를 놓친 노총각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사회의 상식으로 30대 초중반에는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것은 ‘비정상’이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미소를 설득한다.
“우리 부모님 저렇게 들뜬 모습 십년만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 보고 싶다는데 그 소원도 들어드리고 싶고.... 지금 너랑 나랑 가장 중요한 건 안정감이야.... 너 그렇게 철부지처럼 생각하지 말고.... 이런 것도 기회야 집 생기지 가족 생기지”
그가 말하는 안정감을 위한, 부모님을 만족시키기 위한 결혼은 때가 되어 서로 조건이 맞아서 하는 결혼이다. 그에게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란 철부지의 생각에 불과하다. 이렇게 내적인 가치가 아닌 타인이나 세속적 조건을 기준으로 결혼을 정의하고, 사회 표준의 삶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아 감금까지 감행하는 록이네는 뿌리 깊은 스놉의 집이다.
-정미
마지막으로 찾아간 친구는 기타를 치던 정미이다. 미소보다 언니인 그녀는 부자인 남편을 만나 큰 저택에서 아이를 돌보며 지낸다. 첫 등장에서 그는 아주 인위적일 정도로 높고 명랑한 어투로 아이를 어르면서, “아이란,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 같아.”라고 고상하게 말한다. 이 때 관객은 그의 행동과 말투가 매우 꾸며졌으며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느낌은 빗나간 것이 아니다. 정미, 그의 남편, 미소가 함께 외식을 하는 장면에서 남편은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내에게 명령한다. 이때의 대화를 통해 남편의 부가 그녀를 그렇게 복종적으로 살도록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아내가 대학 시절 어땠냐는 물음에 미소는 ‘기타를 아주 잘 치던,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답하는데 이에 대한 남편의 냉담한 반응을 보고 정미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간다. ‘조신한 현모양처’로서 구축해온 자신의 이미지에 균열이 갔음을 느낀 그녀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미소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요즘 담뱃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집이 없을 정도로 돈이 없으면 나 같으면 독하게 끊었겠다야”
“알잖아, 나 술담배 사랑하는 거.”
“아이고 그 사랑 참 염치없다야....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담배라는 것도 솔직히 진짜 한심하고 그것 때문에 집도 하나 못 구해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서.... 네가 뭔가 좀 잘못됐다는 생각 안 드니?.... 집이 아무리 넓어도 남이 우리 집에 오랫동안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법이야. 그걸 왜 모르니 너는?”
“난 아니니까. 난 아무리 좁은 방에 친구들이 와서 자도 그냥 반갑고 좋으니까.”
“그렇겠지. 넌 가정이 없으니까 모르겠지.... 미소야. 너를 우리 집에 지내게 하는 게 너한테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보증금에 보태서 빨리 방 구해라.... 그리고 내가 본의 아니게 폭력적이었다면 그건 사과할게.”
미소가 온 첫 날 “야, 너 내 친구야. 이 집 손님이라구. 그냥 편하게 있어.”라고 말하던 정미는 이제 그녀의 염치없음을 비난한다. 미소는 정미의 집에 있으면서 안정적으로 숙식을 제공받았고 그래서 보증금으로 쓸 돈을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그 집에서 지내는 것은 미소에게 실제로 큰 도움이었다. 그런데 정미는 ‘미소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를 들며 빨리 방을 구하라고 말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라는 걸 위 대화에서 잘 알 수 있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본의 아니게 폭력적이었다면 그건 사과할게.”의 대사를 하면서 정미는 예의 그 고상하고 꾸며진 미소를 짓고 그런 그녀가 오랫동안 클로즈업 된다. 전혀 미안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우리는 정미가 ‘가면 뒤에 숨겨진 내심’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스놉의 한 특징이다.
“염치가 없다, 가정이 있으면 다르다, 돈이 그렇게 없으면 술이랑 담배를 먼저 끊어야 한다.” 그녀의 폭언에는 현모양처로 연출되어 온 자신과 그를 통해 구축된 가정에 대한 자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미소에 대한 몰이해와 비난이 아주 원색적으로 드러난다. 솔직히 정미의 대사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집을 잃을 처지라면 술과 담배가 아무리 좋더라도 잠시나마 끊으려 노력할 것이며, 친구의 집이 아무리 넓더라도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눈치를 보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사실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세상의 상식이다. 또 그 말들은 거친 발화 방식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반발을 살지 모르지만 사실, 미소가 방을 빼고 친구네를 전전하는 동안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둘 가져왔던 의문들의 발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만난 정미가 이렇게 막말을 퍼부을 수 있는 캐릭터인 것은 영화의 시작부터 중반부까지 쌓여온 미소의 삶의 방식에 대한 우리-스놉-의 몰이해와 의문을 종합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미운오리새끼 미소
다섯 친구들은 아주 개성적인 인물들로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지만 하나 같이 세상의, 사회의 상식과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준적인 삶의 궤도 혹은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고, 돈, 승진, 집 등과 같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하거나 그것들에 억압받으며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스놉이며, 스놉의 몰이해 속에 부유하는 미소는 미운오리새끼 같은 존재이다.
2. 정신적 댄디
(1) 보들레르의 정신적 댄디
최초의 댄디는 영국의 조지 브러멜로 우아한 넥타이 매듭, 독특한 재단방법 등의 세련된 옷차림과 우월한 취향으로 당시 사교계를 주름 잡고 유행을 이끌며 사회적 권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영국의 댄디즘은 프랑스로 건너가며, 특히 보들레르에 의해 물질적 우아함의 단계를 넘어 정신적인 차원의 것으로 격상되었다.
그에 따르면 댄디란 “스스로 독창성을 이루고자 하는 열렬한 욕구”에 사로잡힌 “정신적 귀족주의자”이며 댄디즘은 “퇴폐 가운데 빛나는 마지막 영웅주의의 섬광”이다. 즉 보들레르는 예술가로서 경제적, 사회적인 요구에 굴복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실용주의적인 세상에 맞서 개인의 자율성을 보존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이를 통해 무지한 군중과 천박한 부르주아에 대한 멸시, 예술 이외의 모든 실용적 추구에 대한 무관심이 드러난다.
(2) 현대의 댄디, 미소
-주눅 들지 않기
미소의 상황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비참하기 그지없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 번도 미소에 대해 연민을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소는 조금도 안쓰럽게 혹은 불행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눈치 보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미소는 친구들의 집에서 며칠씩 묵으며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살려 청소를 하거나 밥을 지어주기도 한다. 미소가 언제나 떳떳한 것이 단순히 ‘신세지는 것’을 자신의 청소나 요리, 그리고 새로운 집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로 주었던 계란 한판으로 등가 교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미소의 가치관으로는 그런 삶의 방식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미소는 월세 인상으로 고정 지출들 중 무언가를 포기해야할 때 기호식품인 술과 담배가 아닌 집을 가장 먼저 포기한다. 그는 남자친구에게 “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 그게 내 유일한 안식처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담배, 위스키라는 취향이 그 무엇에도 우선하는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그녀에게 집이란 특별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고 그래서 집 없이 떠도는 삶이란 부끄러운 것이 아닌 것이다.
-동요하지 않기
또 미소는 동요하지 않는다. 미소는 친구들의 집을 떠날 때 꼭 뒷면에 진심어린 한마디를 적은 대학시절 사진 몇 장씩을 남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록이의 집에 감금되었다 겨우 탈출할 때나 정미가 백만 원짜리 수표를 건네며 수치를 주고 난 후의 상황에서도 미소는 사진과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면 공포, 수치 혹은 분노에 뒤도 안돌아보고 그들의 집에서 뛰쳐나올 것 같지만 미소는 가장 따뜻한 한마디를 적어 남기고는 유유히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영화 전반에서 미소는 잘 웃지도 않지만 불안해하거나 흥분하는 일, 화내는 일도 없다. 그녀가 감정적 동요를 드러낼 때는 남자친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근무를 떠난다고 할 때뿐이다. 또 한 번 그녀가 평소의 나긋한 말투에서 언성을 높일 때는 담뱃값이 올랐을 때이다. 그러니까 미소는 단 한 순간도 타인 혹은 세상이라는 외재적 요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동요할 때는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자신의 삶에서 위태로워질 때뿐이다.
-보들레르의 시, 미소의 위스키
스놉인 미소의 친구들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한다. 집으로 대변되는 그들의 가치는 담배와 위스키로 대변되는 미소의 가치와 아주 달라서 미소는 그들의 집을 전전할 때 철부지, 바람 든 사람, 염치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미소가 주눅 들거나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는 다른, 자기 내면의 취향과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이 중시하는 사회적, 경제적 가치들과 실용주의에 대항해 자신의 취향과 가치를 고수하는 보들레르의 정신적 댄디즘과 일치한다. 보들레르는 “빵 없이 3일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 없이는 결코 버틸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 ‘빵’은 부르주아지 혹은 우매한 군중이 중시하는 물질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며 ‘시’는 이와는 반대되는, 정신적이고 독창적인 가치이다. 록이에게 미소는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말하는데 이때 집은 보들레르가 말하는 빵, 생각과 취향은 시에 대응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미소가 이 시대의 댄디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고독한 영웅
소공녀는 독립영화로서는 크게 흥행한 편이고 매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미소의 선택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해 그녀에게 이입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평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나 또한 조금은 그렇게 느꼈다. 보들레르는 댄디를 “데카당스 시대에 영웅성의 최후의 폭발”이라 표현한다. 앞서 분석한 것과 같이 영화에서 미소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스놉으로 그려지는데, 이런 부르주아 혹은 속물의 세계에서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심지어 관객에게도- 독창적 취향과 생각을 그러안고 홀로 떠도는 미소야말로 소외된 최후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범인(凡人)은 영웅을 이해할 수 없으며 ‘마지막’ 영웅을 이해할 또 다른 영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더 멀어진 스놉과 댄디
(1) 진화한 스놉
영화의 끝 부분에서는 스놉과 댄디를 아주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다. 미소를 제외한 밴드 멤버들이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데, 바로 보컬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이다. 여기서 문영이 청첩장을 나누어주게 된다. 삶에 치여 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그들이 처음 다 같이 만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되는 것 모두 경조사를 통해서라는 점에서 이 세상이 중시하는 것들에 맞추어 살아가는 스놉으로서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어 그들의 속물성은 더욱 강조된다.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장소라 할 수 있는 집에 미소가 찾아오면서 그들은 그녀에게 각자의 사는 모습 내지는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도 그것들을 같이 보았다. 그러나 이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오랜만에 서로를 만났음에도 불구 유일하게 부재한 미소의 이야기를 피하는 듯 하다가 결국 스치듯이 이야기를 꺼낸 누군가에 의해서 아주 피상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아무도 그녀가 자신의 집에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자세하게 하지 않는다. 또 다시 누구 하나가 “미소가 우리 집에 왔었는데, 여전히 웃는 게 예쁘더라.”며 그녀의 방문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모든 것을 생략한 채 꺼낸 뒤에야 하나둘씩 딱 그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미소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게 되면 자신의 쪼들리는 형편, 하우스 푸어가 된 신세, 그녀에게 옹졸하게 굴었던 것 등 인정받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말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스놉의 감각으로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일하게 부재한 오랜 친구 미소의 이야기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수가 적어지는 이유이다. 스크린 밖의 스놉인 나조차도 그 가식적임에 약간의 혐오를 느꼈다.
(2) 더 고고해진 댄디
다섯 스놉은 자신의 집을 방문했던 미소에 대해 말을 아끼지만 동시에 그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돌아가며 미소를 회상하는 말을 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배경에 깔리고 화면은 차창 밖의 휙휙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을 담는다. 이 때 겹겹이 옷을 껴입은 여성이 스쳐 지나가고 화면은 이제 그를 쫓는다. 얼굴을 정면에서 비추진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미소임을 안다. 그녀는 예전과 같은 코트를 입고, 여전히 매일 밤 한 잔의 위스키를 마시며, 재떨이로 쓰는 보온병을 들고 길을 걸으며 담배를 핀다.
이때 미소의 댄디즘을 고양하는 것은 그녀의 새어버린 머리카락이다. 영화 초반에 비추어지는 미소의 가계부를 통해 고정 지출 중 약값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소는 그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새어버리는 병을 갖고 있는데 약을 꾸준히 먹지는 못했는지 영화 초반에서도 이미 머리 앞부분이 살짝 물 빠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제 미소의 머리카락은 모두 새어버려 회색에 가깝고 이를 통해 미소가 집에 이어 약까지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밤에, 강가의 불을 켠 텐트 안에 앉아있는 여자의 실루엣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젊은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리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히 큰일이다. 관객들은 ‘미소는 집을 잃고 이젠 머리가 새어 가는데도 아직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 못한 거야?’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미소는 여전히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핀다. ‘집이 없어 텐트에 사는 것’과 ‘젊은 여성의 머리가 샌 것’ 모두 아주 ‘비정상’적인 상황이고 미소의 긴 회색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의 시각적인 여운은 꽤나 길다. 엔딩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두 가지 설정 및 연출은 부르주아 세상에 대한 그녀의 꼿꼿한 대항, 정신적 귀족주의를 마지막까지 강조한다. 스놉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댄디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자연스럽게 댄디를 비추는 연출은 스놉과, 경제적 상황의 측면에서는 악화되었지만 정신적 귀족성은 더 강해진 댄디의 대조를 드러내기에 적절하다.
III. 미소의 카르페디엠은 연속적이다
1. 카르페디엠과 스키조
쾌락주의 철학의 시조인 에피쿠로스는 “그대는 신이나 그의 사원을 위해, 국가나 강력한 문화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그대의 단 한번 뿐인 인생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외부적인 요소가 아닌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또 “그런데, 그대들은 그대들이 가진 유일한 것, 곧 현재 이 시간에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산다는 것을 내일로 미루기 때문에 무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서는 그 행복이란 바로 이 순간에 추구되고 느껴야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을 가진 Carpe Diem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카르페디엠은 분열적 시간과 연관 지어 이해되기도 한다.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던을 분열증, 즉 스키조로 이야기한다. 기억, 과거와 미래, 자아 정체성 등의 시간에 대한 느낌은 언어의 영향이고 스키조는 기표간의 정밀한 조합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포스트모던을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의 연속성에 관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포스트모던의 스키조는 따라서 과거도 미래도 없이 순간으로서의 현재만을 살게 되며 이는 고립적이고 분열적일 수 밖에 없다. 자아정체성은 나에 대한 연속적인 감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누구인지조차 불명확해진다.
이처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프레데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던에는 카르페디엠과 연결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2. 미소와 카르페디엠
미소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주, 1년 후, 노후를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오늘 번 돈을 오늘의 담배와 위스키에 쓸 뿐이다. 담배를 피고 위스키를 마시는 그 순간 미소는 충만하고, 내일엔 내일의 일과 일당이 있고 또 내일의 위스키와 담배가 있다.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동안 미소가 현재의 만족이나 행복을 다른 더 ‘실용적인’-스놉이 추구하는- 것으로 대체하거나 유예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미소는 철저하게 카르페디엠적이다. 번 돈을 내일 없이 소비하고 당장의 만족감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탕진잼’, ‘YOLO' 등의 말로 대변되는 요즘의 소비 양상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에 집중하는 미소는 과연 포스트모던의 스키조일까?
3. 유예된 혹은 실종된 행복
미소의 주위 인물들을 생각해보자. 미소가 정신적 댄디이고 그들은 스놉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기도 하지만 미소가 현재를 사는 인물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현재 행복을 미래로 자꾸만 유예하는 존재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은 미소를 사랑하지만 함께할 시간을 이년 뒤로 미룬다. 그는 훨씬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의 해외 파견 근무에 자원했고 선발되어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미소야 근데 거기 가면 생명수당 붙어서 월급을 세배 많이 준대”라는 그의 말에 미소는 “생명수당?”이라고 반문하며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솔은 학자금 대출을 갚고 미래에 미소와 살 집을 구하기 위해 해외 파견직에 자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뒤로 하고 그녀와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오지로 2년 동안 일을 하러 감은 현재의 행복의 오랜 유예를 의미한다.
문영은 더 큰 회사로 옮기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행복은커녕 생존조차 버거워 보인다. 링거로 생명을 촌각 단위로 가까스로 연장하며 돈을 버는 것 같다. 현정의 집 쪽방에는 그녀가 대학시절 쳤던 키보드가 놓여있다. 미소에게 그녀는 그때 참 좋았었다고 말하며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하는데 키보드는 그녀가 행복했던 시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현정은 모두가 잠든 밤에 소리 나지 않는 키보드를 어루만지며 눈물짓는다. 정미는 늘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지만 사실 그 뒤에서 그녀는 남편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자신을 재단하고 있다. 미소에게 심한 말을 하고, 그녀가 떠난 뒤 정미는 미소가 남긴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복합적 감정에서 비롯된 눈물이겠지만 이 때 사진 속 ‘기타를 잘 치는 뜨거운’ 대학시절의 정미가 클로즈업 된다는 점을 통해 정미가 현재의 자신에 대한 결핍감과 공허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무리한 아파트 마련으로 이십년간 이자의 노예 신세를 예약하고 매일 밤 술에 절어 눈물 흘리던 대용까지. 이들은 한솔처럼 현재의 행복을 미래로 유예한 것조차 아니다. 외부으로부터 부과된 의무나 역할에 매진하던 중에 행복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잃어버린 것 같다.
4. 누가 스키조인가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간은 바로 지금, 외적 요소가 아닌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하고 이것이 바로 카르페디엠이다. 미소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위와 같이 현재의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거나 외적인 요소들에 골몰하여 불행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카르페디엠과는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나에 대한 사유가 없고 자아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람, 분열되고 고립된 포스트모던의 스키조는 누구인가? 몇 살 쯤 결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 다음 달 생활비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는 것, 마감일이 있는 업무를 기한에 맞추어 처리하는 것, 내 집 마련을 위해 해외파견을 나가는 것은 미래라는 시간에 대한 연속적 감각을 갖고 있어 할 수 있는 행위가 맞다. 그러나 그 행위를 하는 주체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서 의의를 찾지 못하며 행복하지 않다. 현재는 그저 현재로 남을 뿐 과거나 미래와 연결되어 어떤 의미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먼지 앉은 키보드나 20년 전을 담은 사진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진정한 자신과 단절되어 행복하지 않으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고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분열적이며 공허하다. 프레데릭 제임슨이 말하는 포스트모던의 텅 빈 기표 같다.
반면 미소의 카르페디엠적 삶의 태도는 오롯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따라 선택한 것이다. 미소는 자신이 언제 충만한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안다. 순간의 행복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얼핏 프레데릭 제임슨의 영구적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 같아 보일지 모르나 그녀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그녀의 카르페디엠은 기의가 굳건하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연속성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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