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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음
좋은 시절의 파리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파리의 딜릴리를 아주 기대하고 있다가, 개봉하는 날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쾌했고 결론적으로는 이 영화 별로였다.
주인공인 유색인종 여성 딜릴리는 깜찍한 리본을 머리에 달고 줄넘기하기를 좋아하는 "깜찍한 소녀"였고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렐은 "잘생긴 백인 소년"이었다. 오렐의 절반이나 되는지 모르겠는 작은 체구의 딜릴리는 영화 내내 당찬 발언과 행동으로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사실은 그냥 당찬 쪼끄만 여자애일 뿐이었다. 오렐과 딜릴리가 어울려다님을 생각할 때 둘이 나이 차이가 있을지라도 또래일텐데- 딜릴리가 당차고 똑똑하게 그려지긴하지만 어쨌든- 여전히 유아적인 외형과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당대 파리의 유명인사들을 "얘들 다 파리에서 활동했다 잘 봐라 멋지지" 식으로 하나하나 보여주는 와중에 HIStory에는 기록되지 못한 콜레트를 등장시키거나 마리 퀴리를 포함한 세명의 당대 여성 유명인사가 회합하는 장면, 네발을 통해서 성차별이 극악으로 치달았을 때의 끔찍함 등을 연출함으로써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매우 노력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온갖 장신구를 매달고 다급한 와중에도 아름다움 고상함을 잃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마지막 작전을 수행할 때 딜릴리의 편한 옷차림은 금색 리본으로 치장된다.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 메시지도 어설프다. 악당들은 대부분 보통의 선한 서양인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외양이다. 눈이 쭉찢어지고 아주 이방인처럼 생겼는데, 네발에 대한 저주를 퍼붓던 마스터맨의 수장은 첫눈에 봤을 때 서양 애니메이션 등에서 만연하게 소비되는 일본인- 동양인의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코에 링을 낀 마스터맨들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성차별, 인종차별 철폐를 외치지만 연출의 뿌리에 이미 연출자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근본적인 편견이 잔뜩 깔려있는 영화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새로운 인물을 만날때마다 "야무진" 불어로 "귀엽게" 인사하는 딜릴리의 모습은 피씨함을 추구하려 하는 이 영화의 표면적인 메시지와 너무 모순되어서 볼때마다 속이 거북했다. 포옹과 관련하여 반복되는 언급도 억지감동을 끌어내려는 장치로만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네발"에 대한 상상력은 정말 끔찍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게 아니라면 이런 것을 상상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싫었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멋진 메시지를 던지고 모두가 이루는 화합의 아름다움 따위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었던 것 같다. 엔딩크레딧 때도 인종이 다른 여러 여자아이들이 춤을 추며 그런 주제의 샹송을 부른다. 그 여자 아이들은 여전히 있는 대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춘다. 이 영화는 끝까지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상영관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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