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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와 모방으로 점철된 피해자 마츠코의 일생 ;
이리가라이의 이론으로 분석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I. 들어가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이미 최악인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마츠코의 짧은 삶을 다룬 영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있어 고갈되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에 경탄하고 예수의 그것과 동일시되는 그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에 주목한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남성으로부터 학대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마츠코가 이해되지 않았고 불편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이 영화를 감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뤼스 이리가라이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으로 이 영화를 분석해보려 한다.
II. 뤼스 이리가라이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에 대한 개괄
뤼스 이리가라이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을 통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성이 억압받을 때 생기는 심리적인 영향에 관심을 가지는 이론이다. 이는 여성이 예속을 겪고 동시에 해방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이 모두 언어임을 강조한다. 이리가라이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은 언어를 통한 심리적 억압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화 속의 남성들은 여성성을, 남성의 생각이나 욕망을 반영한 것, 즉 남성성을 투사한 것으로 규정하며 이는 언어에 반영되어 여성을 억압하고 예속감을 준다. 이런 환경에서 사회화된 여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규정된 여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압박을 느끼고 이와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리가라이는, 여성이 스스로를 남근을 ‘결여’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이를 선망하면서 괴로워할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남근선망가설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리가라이는 이를 남성이 가진 거세의 공포를 여성에게 투사하고 여성이 독자적 감정 혹은 욕망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은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데, 가부장제의 논리와 일치하지 않는 생각에 대해 침묵하거나 그에 일치하는 여성상을 모방하는 것이다. 한발 나아가 이렇게 남성이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은 대상으로 전락하는 여성대상화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남성은 보는 주체가 되어 세계를 통제하고 명명하지만 여성은 보이기 위한 존재에 국한되는 남성응시의 개념이 생겨난다. 여성은 남성 경제 체제 내의 상품 혹은 표지 정도로 인식되며 이 때 주체로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리가라이는 여성들만이 교감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II. 이리가라이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분석
1. 줄거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주인공 마츠코의 사체가 발견되고 그녀의 조카인 쇼가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고모 마츠코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마츠코의 생애가 쇼가 유품 정리를 하며 고모에 대해 알아가는 현재와 교차 편집되는 액자적 구성을 띈 영화이다.
마츠코는 부모님, 아픈 여동생,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우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었는데 아픈 여동생에게만 다정해서 마츠코는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다.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얌전히 학교를 다니고 초등학교 음악선생님이 된 그녀는 수학여행에서 제자인 류가 벌인 여관 절도사건을 덮어주려고 거짓말을 치다 더 큰 곤경에 빠져 사직서를 내고 집을 떠난다. 마츠코는 이 때 부터 여러 남자들과 사랑을 하고 그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며 매춘, 살인 등 산전수전을 다 겪고 감옥에 간다. 그 곳에서 진정한 친구 메구미를 만나 안정적으로 지내는 듯 했으나 야쿠자가 된 제자 류와 우연히 재회해 사랑에 빠진다. 감옥에서 출소한 류에게 버림 받은 뒤 마츠코는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서 생활하며 병들어 간다. 감옥에서 배웠던 미용기술로 메구미의 회사에서 일하려고 마음을 먹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듯 했으나 동네 아이들의 폭행으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2. 이론의 적용
(1) 마츠코의 트라우마와 가부장적 기준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달리 마츠코의 여성 가족 구성원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마츠코의 여동생 쿠미는 병들었기 때문에 자립할 수 없고 언제나 무력하며, 어머니는 영화 전체에서 발화를 고작 두 번 정도 하는데 그마저도 흐느낌이나 “마츠코!”라는 외마디 탄성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가부장적 환경에서 마츠코는 아버지의 생각과 욕망을 반영한 모습-참한 초등학교 교사-으로 자랄 것을 강요받고 실제로 그렇게 자라났지만 조금이라도 난감한 상황에 닥치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절도사건을 겪는 마츠코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 제자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버리거나, 윽박지르는 여관 주인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을 선택한다.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그녀의 생각과 상대의 고압적 태도에 대한 두려움은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츠코의 트라우마이다.
마츠코는 곤경에 처했을 때 특정한 표정을 짓는 기이한 버릇이 있는데 그녀는 내레이션을 통해 스스로 이를 트라우마라 칭한다. 아픈 동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싶었던 마츠코는, 이 표정을 지은 코미디언을 볼 때만 유일하게 웃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이 표정을 지었을 때 그가 웃어주는 것을 통해 결핍된 사랑을 채우고자 했다. 이 트라우마는 영화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발현되는데, 이는 언제나 위압적 남성과 마주했을 때이다. 첫 번째는 아버지, 두 번째는 절도 사건과 관련해 윽박지르는 교장, 세 번째는 마츠코를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던 여관 주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의 발현이다.
마츠코는 가부장적인 가정의 분위기에서 아버지의 생각과 욕구를 반영한 모습으로 자라게끔 압박을 받았고, 이에 따라 아버지가 규정한 자신의 모습과 실제의 자신을 동일시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한채 겁먹고 굴복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리가라이가 말한 동일시의 압박에서 오는 표현의 부자유스러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츠코의 트라우마 또한 이와 같이 가부장적 시선의 압박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 근원이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고 고압적 상황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발현된다는 점 때문이다.
(2) 마츠코의 애인들과 가부장적 여성상의 모방
절도사건을 통해 직장을 잃고 절망한 마츠코는 집을 떠나게 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녀가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후 그녀는 소설가, 회사원, 사기꾼, 이발사, 야쿠자 등 여러 남성들과 사랑에 빠진다. 다른 남성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설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수입이 부족한 예술가 애인을 돕기 위해 이리저리 돈을 꾸러 다니고, 회사원과 불륜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는 하루 종일 장을 보거나 청소를 하고, 예쁘게 꾸며진 식사를 차리며 전형적인 가정주부의 모습으로 변모한다.사기꾼 애인을 만났을 때는 노출이 많은 옷차림에 진한 화장을 한 모습으로 바뀌었다가 이발사와 살게 된 마츠코는 단발머리에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일하는 애인의 옆에서 충실하게 그를 보조하거나 집안일을 한다.제자였고 이제는 야쿠자가 된 류의 연인이 되었을 때는 조직원들에게 류가 전달하라는 물건을 전달하고, 그가 성관계를 맺으라는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모르는 곳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생활을 반복한다.영화에선 애인이 바뀜에 따라 마츠코의 행동, 외양 뿐 아니라 화면 자체의 분위기, 색감 모두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정주부로서 마츠코의 집안은 온통 인위적인 꽃무늬와 밝은 색감으로 꾸며져 있으나 야쿠자의 연인이 됐을 때의 화면은 늘 어둡고 음침한 색감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마츠코가 무엇을 욕망하느냐와는 관계가 없으며 상대 남성의 필요와 욕구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성이 남성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가부장제의 논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는 경우 침묵을 지키거나,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의 표상을 모방하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누구를 사랑하고 있느냐에 따라 인물의 성격, 말투, 외양 등 한 사람을 특징짓는 거의 모든 것들이 상대방에 맞추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은, 마츠코가 후자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3)마츠코의 신격화
이리가라이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의 적용을 통해, 언뜻 보면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혹은 의존적이고 나약한 성격으로 인해 혐오스런 인생을 살게 된 것 같은 마츠코가 사실은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억압과 폭력의 희생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말미에 이루어지는 마츠코의 신격화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마츠코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제자 류는 마츠코의 마지막 연인으로, 야쿠자로 살다 감옥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가학적이었던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준 마츠코를 신으로 여기게 된다.류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항상 신약성서를 지니고 다니는데 이는 화면에 꽤 자주 클로즈업 된다.이를 통해 이 영화는 마츠코를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의 화신으로 신격화하려는 의도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장면은 자주 등장한다.
류의 성경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장면과 조카인 쇼가 마츠코의 짐 가방에 항상 달려있던 십자가 모양의 장식품을 자신의 핸드폰에 달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 교차편집 되면서 마츠코의 사랑과 희생의 숭고함이 더욱 강조된다.
앞서 이리가라이의 이론을 바탕으로 마츠코가 남성 언어의 세계에서 억압받아왔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나타났으며 스스로를 학대하면서까지 가부장제가 추구하는 여성상을 모방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분석을 해보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연출과 주제의식은 마츠코의 일생을 혐오스럽게 만들고 그녀를 평생토록 학대한 주체로서의 가부장제와 가부장적 남성들의 폭력성에 대한 인식을 흐린다. 이에 따라 마츠코의 비극적 일생은 그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 드러나지 못하고 개인의 기구한 운명, 나약한 심성에 따른 결과로 인식될 뿐이다. 마츠코의 신격화는 가부장제와 남성언어로 대표되는 가해자들을 윤리적 잣대에서 빗나가게 함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사랑의 고귀함과 마츠코에 대한 연민 정도로 미화시킨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가부장제 안에서의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
IV. 나가면서
이리가라이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을 통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분석해보았다. 마츠코는 어릴 적부터 가부장적 시선에서 규정된 정체성과 자신의 동일시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압박에 시달렸다. 그녀는 가부장제로 고통 받으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부장적 질서 내부의 남성들로부터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며 그들의 논리에 맞는 여성상을 무한대로 모방하다 삶을 마감했다. 가부장적 질서 안의 모든 여성들이 마츠코와 같은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애에서 최악인 순간들을 꼽아 전기적으로 합쳐본다면 마츠코의 일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느낀 불편함의 실체이다.
마츠코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슌지는 그녀를 혐오스런 마츠코라 칭하지만, 정말 혐오스러운 것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가부장적 질서였다. 사실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아니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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